생각/일상

퇴사 D-1

기린씨 2023. 1. 3. 19:03

신년에는 퇴사하고 백수가 될 예정이다. 내일은 마지막 상담과 서류 정리하러 1-2시간 머무르다 올 듯. 온라인 심리 검사해석과 화상상담만 남기고 전부 정리. 월요일에 마지막 상담하는 아이랑은 발길 떼는 게 못내 아쉬워서 머뭇거리며 인사 끝이 길어졌다.

오늘은 출근을 안해서 공식적으로 첫 백수(?) 혹은 백수 되기 전날이었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밤새 온 연락들 확인 후 주사랑 약먹고 아침을 챙겨 먹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좀 읽다가 샤워하고 점심 먹고 예약해 둔 치과에 감. 처음가보는 곳이었는데 친절한 곳이어서 편안했다. 가격은 조금 비쌌음. 치과 끝나고 운동삼아 지하철 두정거장 정도를 걸어서 미용실 근처 카페에 갔다. 예약해 둔 시간 전까지 남은 소설을 읽으려고 했는데 웬걸 옆자리에 너무 흥미진진한 손님들이 앉았다. 사기 당한 피해자들과 법률 상담해주는 분의 미팅. 사기꾼은 수감중이며 곧 출소하게 되는 데 그 이후에 떼인 돈을 어떤 과정으로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상담이었다. 법무사가 하는 일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꽤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느껴졌다. 영업직이라 실적이나 인센티브가 중요하겠지? 내가 고등 때 문과였다면 고려해볼만한 직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가이드가 되는 게 참 매력적인데 나는 영업엔 영 소질이 없다. 생각해보니 중고등 시절 진로 교육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알아야 고민하고 노력할텐데 나는 아무 생각없이 감으로 찍어서 전공을 정했다.

이야기가 좀 샜는데 머리하고 집에 걸어오는 길에 해가 지는 걸 보면서 하루가 이렇게 짧을 수 있구나,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이렇게 평안해도 되는걸까? 라는 불안이 따라왔다.

행복과 불안 그리고 고통과 희망은 한 세트인 것 같다. 행복할 때는 행복이 깨질까봐 이 행복이 괜찮은건지 불안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고통스러울 때는 이것만 끝나면 편안해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ex)고3, 수능만 끝나봐라 아주 세상 모르게 놀아제낄테다)

우리 뇌는 본능적으로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행복이 과할 때는 불안 한스푼 고통이 넘칠 때는 희망 한줌 뿌리는 거겠지 싶었다. 눈엔 안보이지만 열일하고 있는 항상성 친구들의 존재를 느껴본 날이다.